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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 주도유단

by photoguide 2014. 3. 26.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  주도유단

술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시인 정호승의 시로 알려진 술 한잔은 '인생은 나에게 술한잔 사주지 않았다'는 가수 안치환이 노래로 부르며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어찌보면 술이란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위안이 되고 힘이되는 마법의 물과 같다. 가끔 힘들때 술이라도 한잔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그래서 드는지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 술이란 마셔야 하는 운명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인 정호승은 인생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고 아마도 이 시를 쓴 것 같다. 살아가면서 느낀 무엇인가에 대한 분노와 고뇌가 아쉬움과 원망으로 이렇게 은유적으로 표현되었나 보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하여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조지훈 시인의 주도유단(酒道有段)

 

◯ 부주(不酒)=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9급

◯ 외주(畏酒)=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내는 사람-8급

◯ 민주(憫酒)=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7급

◯ 은주(隱酒)=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6급

◯ 상주(商酒)=마실 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5급

◯ 색주(色酒)=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4급

◯ 수주(睡酒)=잠이 안와서 술을 먹는 사람-3급

◯ 반주(飯酒)=밥맛을 돕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2급

◯ 학주(學酒)=술의 진경(眞境)을 배우는 사람(酒卒)-1급

◯ 애주(愛酒)=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초단

◯ 기주(嗜酒)=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酒客)-2단

◯ 탐주(耽酒)=술의 진경(眞境)을 체득한 사람(酒境)-3단

◯ 폭주(暴酒)=주도(酒道)를 수련(修練)하는 사람-4단

◯ 장주(長酒)=주도 삼매(三昧)에 든 사람(酒仙)-5단

◯ 석주(惜酒)=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酒賢)-6단

◯ 낙주(樂酒)=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酒聖)-7단

◯ 관주(觀酒)=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는 없는 사람(酒宗)-8단

◯ 폐주(廢酒)=열반주(涅槃酒),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9단

 

그러나 인생이 나에게 술을 사주던 사주지 않던, 우리가 술을 한잔 하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술에도 도(道)가 있고 단(段)이 있다는 것이다. 즉 주도유단(酒道有段) 이것이다. 일찌기 조지훈 선생은 애주가로 알려졌지만 그만 빠른 나이인 40대 후반에 돌아가신 분으로, 그는 술을 먹는 사람을 몇 단계로 구분하여 어떤 사람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음주를 하는지를 가늠했다. 시인 조지훈은 술 주정도 교양이라 하면서 무엇을 많이 안다해서 다 교양이 높은 것도 아니고, 많이 마시고 떠드는 것만이 주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며 음주에도 엄연한 단이 있다고 했다.

 

그는 첫째로 술을 마신 연륜이 문제요, 둘째는 술을 마신 친구가 문제요, 셋째는 술을 마신 기회가 문제이며, 넷째 술을 마신 동기요, 다섯째가 술버릇인데 이를 종합해 보면 그 段의 높이를 가늠 해볼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주도 18단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부주(不酒)는 술울 아주 마시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 마시는 사람, 이런 사람은 사실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내가 술을 안 먹겠다는다 누가 강권하느냐 하겠지만 인생과 세상은 가끔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술 안마시는 것이 건강상 부득이하게 정말 안된다면 양해를 구하고 안마시면 되지만 마실 수 있음에도 처음부터 거절하며 안 마시는 사람은 사귀기도 어쩌면 힘든 부류이다.

 

둘째, 외주(畏酒)는 술을 마시기는 하지만 겁내는 사람, 술을 처음 접하는 초보 단계라 할 수 있다. 사실 술을 먹으면 자신을 감당할 수 없는 사태도 발생될 수 있는데 이정도면 자신의 주량이 얼마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술먹기가 겁이 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서서히 술을 접하면서 겁내지 않게 된다면, 그 사람의 주량에 따라 급격하게 술 마시는 횟수는 늘 것이다.

 

셋째, 민주(憫酒)는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지만 술 마시는 것을 민망하게 생각하는 사람, 이런 부류는 다소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는데 단지 얼굴이 빨갛게 된다거나 말을 더듬는다고 혹시 누가 나를 폄훼하거나 손가락질 하지 않나 걱정한다면 술을 어찌 마실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서서히 마시다 보면 민망함은 없어지고 과도한 용기기 날 수도 있기에 우려된다.

 

넷째, 은주(隱酒)는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궁해서 혼자 숨어서 마시는 사람, 어쩌면 지금 우리의 많은 직장인중 하나 일수 있다. 매일마다 늦게 끝나고 야근을 하는데 월급도 적고 정말로 내 수중에 돈이 없다면 슈퍼마켓에서 소주라도 한 병 사서 혼자 마셔야 할 것이다. 성격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주어진 삶의 환경에서 어찌 할 수 그런 경우도 있으니 이해해 줘야 한다.

 

다섯째, 상주(商酒)는 마실 줄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장사속이 밝거나 계산이 먼저 앞서는 사람들이 많다. 말 그대로 이익이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과 접대하는 수준에서 술을 즐기는 부류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듣기 위해서거나 또는 윗사람이나 주변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술을 하는 경우도 이런 경우인데 머리가 좋은 것은 인정하지만 나중에 복잡한 문제가 발생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여섯째, 색주(色酒)는 성생활을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술을 먹고 여자를 밝히는 것은 어찌보면 본능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도 과도하면 건강을 해치는 것이고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젊었을 때는 잘 모르고 객기에 색주를 즐길 수 있으나 만일 나이를 먹어서도 이렇게 색주를 즐긴다면 만수무강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 술을 밝히면서 여자를 찾는 남자치고 가정이 편안한 집이 없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일곱째, 수주(睡酒)는 잠을 자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만사태평한 성격의 사람이다. 사실 술을 먹으면 온 몸이 풀어지고 졸리운 상태가 되는 것은 맞다. 술에 취해 횡설수설 하는 사람보다는 조용하게 잠을 청한다면 이 또한 주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다. 술 한잔 마시고 잠을 가뿐하게 잔다면 많이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히려 긴장을 푸는데도 좋을 수 있을 것이다. 

 

여덟째, 반주(飯酒)는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이다. 점심때 반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식사를 하는데 술 한잔 한다면 밥맛이 더욱 좋다면 이미 술꾼의 반열에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밥을 먹기 전에 나오는 그 많은 반찬이 안주로 보이기 시작한다면 술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반주는 반주로 끝나야 할 것이다. 점심 반주가 지나치면 낮술이 되고, 낮술에 취하면 정말로 대책이 없다. 낮에 술마시고 취하면 애미,애비도 몰라는 옛말을 흘려보낼 일이 아니다.

 

또 아홉째, 학주(學酒)는 주졸(酒卒)이라고도 하며 술의 진경을 배우는 사람, 이 정도면 이제 술에 대해 무엇인가 아는 사람이다. 술을 마신다기 보다는 배우는 자세로 술을 한잔 하는 것인데, 단순하게 취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도 즐겁게 이야기 하며 술에 대해 논하는 수준이다. 아마도 포도주를 즐긴다면 더욱 그럴 것 같다. 술의 향기나 느낌에 대해 누군가에 대해 말하는 것 또한 기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열째, 애주(愛酒)는 주도(酒徒)라고 하며 술의 진미를 아는 사람, 이 단계면 술 없이는 무엇인가 허전다는 사람이다. 애주는 말 그대로 술을 사랑하는 것이다. 술만 보면 먹고 싶고 술과 가까이 하고 싶고 애인과 같이 술을 대하니 점점 술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열한째, 기주(嗜酒)는 주객(酒客)이라고도 하며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 유달리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칭하며 이제 술마시는 것 자체를 즐기는 단계라고 하겠다. 저녁에 술약속이 없으면 왠지 허전하고 답답해서 술친구라도 만들어 술자리를 만드려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단계에 속할 것 같다. 이쯤되면 술 없이는 저녁이 힘들고, 누군가 술먹자는 약속이 없으면 내가 술을 먹자고 누군가에게 연락이라도 해야 한다.

 

열두째, 탐주(耽酒)는 주호(酒豪)라고도 하며 술의 진미를 채득한 사람, 사실 이 단계라면 이제 술에 대해 뭣 좀 알것만 같다. 술의 진미를 체득한다는 것이 사실 말하기가 쉽지 어디 정말 그렇게 되기가 쉬운일인가?

 

열세째, 폭주(暴酒)는 주광(酒狂)이라고도 하며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점점 술에 빠져드는 단계에 있다. 폭주를 한다면 술의 종류나 양을 무시하고 있는대로 술을 마시는 단계로 감히 그 옆에서 누군가 범접하기도 어렵다. 폭주하는 수준의 사람과 술을 대적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열넷째, 장주(長酒)는 주선(酒仙)이라고도 하며 주도삼매에 접어든 사람, 오랜 시간동안 술을 마시는 사람이다. 이 단계에 접어들면 1차나 2차나 3차가 의미가 없다. 그냥 술이 있으니까 계속 술을 마시는 것이다. 등산을 하는 어떤 등반인에게 왜 산에 오르냐고 물으니까, "거기에 산이 있다"는 수준의 답변으로 왜 술을 마시느냐고 묻는다면, 술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나올 수 있다. 이 단계에서 특징은 그냥 계속 술만 마신다. 누가보면 알콜중독의 단계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열다섯째, 석주(惜酒)는 주현(酒賢)이라고도 하며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술을 너무 사랑해 아끼는 지경에 이른 단계이다. 술을 통해 어떤 깨닫음을 얻듯 술의 도를 알고 인정을 주는 사람이다. 보통 이 단계까지만 되어도 술에 대해 도사급 단계라고 하겠다.
 

열여섯째, 낙주(樂酒)는 주성(酒聖)이라고도 하며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한 사람, 이 단계에 오면 술 자체에 대해 이제는 모든 것을 독파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술을 즐기되 술을 술로 보며, 술 자체를 즐기는 술의 성인과 같은 수준이다. 이미 술과 자신이 합일이 되어 동격으로 내가 술이요, 술이 나요 하는 수준으로 술을 마시거나 안마시거나 고단수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열일곱번째, 관주(觀酒)는 주종(酒宗)이라고도 하며 술을 보고 이미 마실 수 없는 사람, 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수준이다. 술은 이제 먹고 취하기 보다는 바라만 보아도 좋기만 한 단계인데, 이쯤 되면 사실상 술 때문에 술을 끊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한때는 술을 좋아했지만 가족과 행복과 여생을 위해, 친구와 더 오랜 우정과 대화를 위해 술은 그냥 옆에만 두고 있다면 이해가 될까?

  

마지막으로 열여덟째, 폐주(廢酒)는 열반주(涅槃酒)라고도 하며 술을 마시는 순간 이미 다른 술 세상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이다. 안타깝지만 술 때문에 돌아가셨다면 이 수준이라 할 것이다. 술로 인생을 끝낸 분이 마지막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인데, 이미 죽어서 술을 마신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안 조지훈은 진정 술을 마시는 것이 머리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돈과 시간만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술을 좋아했던 그도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가 만들어 놓은 주도유단을 보며 지금 우리는 어디에 속하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진정한 술꾼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건강도 안 좋아지면 아무리 주도9단이라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인생이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고 한탄 할 수 있지만 술은 적당히 마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술의 도를 알고 열반주(涅槃酒)를 마시면 무슨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지금 우리는 조지훈 시인의 주도유단중 어디쯤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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