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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 생각나는 영화 [삼사라]

by photoguide 2014. 5. 8.

 

 부처님 오신날 /  다시 생각나는 영화, 삼사라 (The Samsara)

 

부처님 오신날이 며칠이 지났지만, 오래전에 보았던 삼사라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어떤 영화는 저스트 킬링타임용으로 얼마전에 보았어도 남는 것이 없지만 무엇인가 내용이 있는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각인되는 것 같습니다. 흥미 위주로 보는 영화는 오래되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철학적 내용이 담긴 영화는 자꾸 생각납니다. 여기서 소개해드리는 영화 '삼사라'는 인간으로서 삶의 내면을 불교의 관점에서 심오하게 다룬 것으로 기억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봉한지는 이미 오래되어 2004년에 했는데 이미 10년이 된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메모를 해 두었던 것이 있기에 블로그에 기록하여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오늘 시간을 내어 올려봅니다. 영화 <삼사라>에서 주연은 판 나린  숀 쿠(타쉬), 종려제(페마)입니다.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과 고뇌를 담은 영화, '삼사라'는 생과 사의 순환이라는 의미를 지닌 한마디로 윤회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원래 의미는 ‘옮겨진다’ 또는 ‘다시 태어난다’는 것으로 윤회의 전 과정을 의미하는 '삼사라'는 모든 생명은 그것이 쌓은 업보(카르마)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상태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삼사라’는 시작이 없으며, 끝도 없다고 합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한 구도승이 고된 수행을 마치고 마을로 내려갔지만 그곳에서 만난 것은 인간의 욕망과 세속의 번뇌였습니다. 타쉬는 구도승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의문속에서 속세의 여자인 페마와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일상사에 살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정신적 고통을 겪고 고뇌하면서 다시 가야할 길은 또 다른 구도의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업연속에 놓인 두 사람, 타쉬와 페마를 소개하자면  타쉬는 어린나이였던 5세에 불교에 귀의하였다가 장년이 되어 3년 3개월 3일간의 수행을 마쳤으나 환속한 수도승이고, 페마는 그 수도승의 아내입니다.  페마는 타쉬가 마을에 내려가 만난 운명적 여인으로 그녀를 만나 '카르마'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렇다면  타쉬의 고뇌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타쉬는 수도승의 길을 포기하고 페마와 혼인을 하고 아이도 낳고 살지만 마을 사람들과 끊임없는 갈등을 겪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인간적 욕망으로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갖고 그의 이어지는 번뇌, 한편 생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사의 고통은 계속 이어지고 어느것 하나 결국 타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결국 타쉬가 세속적 인간으로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더 큰 후회와 갈등만이 그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타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는 또 다시 승려로 되돌아 가고자 하였으나 이 또한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끝없는 고민을 하는 존재임이 틀림없지만 해답을 찾는 것도 그 스스로였다는 것을 타쉬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타쉬는 파계승이라 단언할 수 있으나, 속세로 나간 타쉬는 그곳에서 또 다른 생의 구도를 찾고 있었다고 할까요. 아니면 욕망과 절제 속에서 그는 어떻게 할 줄 모르지만 현자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여기서 현자는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해야 한 방울의 물이 영원히 마르지 않을까? 라는 질문이 쓰여진 돌판 뒤에
한 방울의 물을 바다로 떨어뜨리면 되느니.... 라는 답글이 보여집니다.

 


욕망과 업의 연속선상에서 진정한 고뇌 그리고 해답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이라는 수레바퀴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결국 자신의 욕망과 운명의 결과 즉 업(業)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타쉬가 수행 생활을 잘하였지만, 욕망에 이끌려 환속을 하고 다시 그 속에서 겪는 갈등이 결국은 타쉬의 업연에 의해 이루어 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보통 사람 이상으로 고고한 수행을 닦았던 그의 이름도 타쉬라는 인간이었고, 타락한 욕망의 소유자로 번민하며 갈등하는 그의 이름도 타쉬였습니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본질을 벗어나지 못하고 욕망의 굴레에 얽매여 어찌 할 줄 모르는 그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보통 사람과도 같다고 봅니다.


타쉬는 불경이나 외는 절간을 벗어나 세상 속에서 인간적 삶을 추구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고통을 받고 있던 것입니다. 타쉬가 자신 밖의 마을 주민들과의 겪는 갈등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 겪어야 삶의 고민과 흔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안의 내적인 갈등으로 방황하던 타쉬가 원래의 수도승으로 가고자 하는 것은 다시 자신으로 돌아가고싶은 순환적 궤도에 놓인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끝에서 이렇게 다시 한번 의문을 던집니다.


한 가지 욕망을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 천 가지 욕망을 모두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

 

이 영화를 통해 타쉬와 지족선사와 그리고 페마와 황진이의 유사성에 대해 고찰해보자면  영화 '삼사라'를 통해 우리는 지족선사와 황진이 그리고 타쉬와 페마의 관계에 대한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지족선사가 황진이를 만나 30년 닦은 도를 허물어 버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를 닦은 것만으로 만족한 것이 아니라 깨닫고 실천하는 도로 자신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것이라 하겠습니다. 혹자들은 오로지 수행하거나 닦는 도를 중요하다고 하지만, 깨닫지 못한 도는 아니 깨닫고 중얼거리는 것만 못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타쉬는 지족선사로 볼 수 있고, 페마는 황진이로 볼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타쉬나 지족선사나 모두 인간적이고 솔직한 사람들 입니다. 타쉬나 지족선사 모두 여인을 만나기 이전에는 경불이나 외고 목탁을 두드리는 불법에 매달리는 승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타쉬는 페마를 만나고, 지족선사는 황진이를 만나고 인간의 고뇌의 진정함과 해탈로 가는 길을 찾고자 하였던 것이라면 너무 과장된 이야기 일까요?  부처님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경읽은 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구도의 길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삼사라'는 자연이라는 어머니를 배경으로 순수한 인간적 고뇌와 깨닫음으로 가는 길을 그린 작품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도 철학적 내면의 세계를 다루고 있어 좋은 영화이지만 대지와 자연을 그대로 담은 영상의 미가 아주 대단한 작품입니다. 끝 없이 펼쳐진 넓고 웅장한 대지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지는 끝 없는 하늘과 떠도는 구름을 배경 아래 삶에 허우적 거리는  인간은 결국 한낱 자연속의 아주 작은 존재로 보이게 만듭니다.  '삼사라,는 이러한 무한한 자연속에서 한계성을 어쩔 수 없이 지니고 있는 인간이 갖는 쾌락과 고통, 사랑과 질투, 기쁨과 슬픔 등을 안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종교적 의미를 떠나 철학적으로까지 묘사하고 있습니다. 만일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국내영화를 보았다면 이 영화가 뜻하는 바에 대해 한층 더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그냥 삼사라는 이 영화에 대해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면 부처님 오신 날, 무엇인가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였는데 동양적 관점에서 '매트릭스'에 이어서 철학적 화두를 영상으로 던져 준 영화라고 봅니다. 그리고 현대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도 어쩌면 '타쉬'라는 이름을 숨기고 다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南無觀世音菩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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