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 지리산 천년사찰의 신비를 살짝 엿보다
대한민국에는 산도 많고 사찰도 많습니다. 우리가 아는 명산 곳곳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는 천년사찰들을 하나하나 보는 것도 참으로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구례에 있는 지리산 화엄사는 꼭 가볼 만한 곳입니다. 지리산은 참 넓고도 깊은 산이고, 어디를 가도 많은 사람들과 사연들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누구이던가? 언제였던가? 이렇게 깊고도 창연한 터에 사찰을 건립한 까닭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가득 채우고 화엄사로 내비게이션을 치고 운전대를 돌려봅니다.
가즈아, 화엄사!입니다.
가즈아! 천년사찰 화엄사
지리산을 둘러둘러 가다보면 나무들도 흐르는 시냇물도 소곤소곤거리면서 무슨 말이라도 건넬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리산은 마음으로 찾는 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리산 형제봉과 차일봉으로 흘러내리는 산자락 두 개를 양 옆에 끼고 있는 화엄사는 천년을 두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또 그럴 것입니다.
화엄사에 관한 설화와 전설은 불력의 신비와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비를 담고 있습니다. 화엄사는 이름과 같이 그냥 듣기만 하여도 범상치 않고 깨우침으로 중생을 이끄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일반 사람들은 깊은 산에 사찰이 있으니 휑하니 보고 오기만 합니다.
화엄사 경내로 들어서면서 세 동자상이 반갑게 맞아주면서, 불견, 불문, 불언을 알려줍니다.
법구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불견(不見)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한다.
불문(不聞)
산 위의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불언(不言)
나쁜 말을 하지 말라,
험한 말은 필경에 나에게 돌아오는 것.
악담은 돌고 돌아 고통을 몰고 끝내는 나에게 되돌아오니
항상 옳은 말을 익혀야 한다.
법구경
화엄사 초입을 통과하여 일주문과 금강문을 지나 천왕문을 거쳐 보제루를 거치는 동안 오래된 건물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화엄사가 지니고 있는 것은 자체의 오랜 역사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정말 잘 보존해야 할 국보와 보물 등도 많은데 그러나 실제로는 봐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례 화엄사(求禮 華嚴寺)
지리산 화엄사 이야기
화엄사가 위치한 곳은 정확하게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입니다. 이곳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로 화엄사의 창건과 중건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지금의 화엄사는 백성 성왕 때 544년에 ‘연기조사'께서 문수보살님의 현몽으로 비구니 스님이신 어머니를 모시고 현재 있는 터에 가람을 최초로 지으셨다고 합니다. 연기조사는 그렇다면 누구신가? 그는 바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화엄학을 전파하신 스님이시라 합니다. 화엄사는 그런 연유로 백제 법왕 때 화엄사상의 중심도량으로 크게 번성하였답니다. 또한 통일신라 때 742년~746년에 걸쳐서는 8원 81 암자로 화엄불국 연화장 세계의 면모를 갖추었던 곳이 화엄사입니다.
통일신라시대를 맞이하면서 중국에서 화엄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의상대사가 화엄사를 크게 중건하여 커다란 불상을 봉안한 장륙전(현재의 각황전)을 지었다고 합니다. 신라 말에 도선국사 때 총림으로 승격되었고, 조선 인조 때 벽암선사가 복원불사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한편 조선 숙종 때는 계파선사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장륙전을 다시 건립하여 각황전이라 명하여 선과 교를 통섭하는 대가람으로 발전시키게 됩니다.
이후, 우리나라가 수 많은 참화를 겪는 가운데 6.25 이후 지리산에 숨어있던 빨치산 잔당의 은신처라며 화엄사를 불 태우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비극적인 사건도 겪습니다. 그러나 당시 차일혁 경무관의 불심으로 어간문 두 짝만 태워서 천년이 넘는 역사적인 불교 문화재를 겨우 유지할 수 있었다니, 화엄사는 정말로 우여곡절도 많은 천년사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는 구례 화엄사를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라 경덕왕 13년(754) 황룡사 승려 연기조사의 발원으로 건립된 화엄종 사찰로 도선국사가 도참설에 의해 중창하였고, 조선시대 벽암각성의 중창 이후 선교 양종 총림의 대도량의 역할을 하였다. 대웅전과 누문을 잇는 중심축과 각화전과 석등을 연결하는 동서축이 직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함 가람배치를 갖추고 있으며, 경내에는 국보 제67호 화엄사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8점 등 중요 문화재가 있어 역사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조선시대에는 선종대본산으로 큰 절이었고,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탄 것을 인조 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가문화유산포털
화엄사의 가람 배치 특징
화엄사 가람 배치도를 보면 이해가 훨씬 빠를 것입니다. 화엄사는 각황전(覺皇殿)이 중심이 돼 가람배치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보통의 사찰이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반면, 화엄사는 각황전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것이 매우 특징적입니다.
화엄사의 주요문화재는 국보로는 제12호 석등(石燈), 제35호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제67호 각황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물로는 제132호 동 오층석탑(東 五層石塔), 보물 제133호 서 오층석탑(西 五層石塔), 보물 제300호 원통전 앞 사자탑(獅子塔), 보물 제299호인 대웅전이 있습니다. 화엄사의 부속 암자로는 구층암(九層庵) 금정암(金井庵) 지장암(地藏庵)이 있습니다.
지리산 화엄사 일주문
화엄사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통과하는 문입니다.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가운데 첫 번째 문이 바로 일주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에 지붕을 얹는 형식으로 세워집니다. 기둥이 나란히 서 있다고 해서 일주문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일주문을 지나는 것은 그 문을 경계로 삼아서 속세의 번뇌를 떨치고 정갈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서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찰을 가면 모든 사찰은 일주문을 거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주문에는 문이 없고 그냥 열려 있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엇? 화엄사 일주문에는 특이하게도 문이 있습니다. 또한 대개의 사찰에는 천왕문에 세상세계의 악귀가 부처님의 정토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사천왕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보통 사천왕은 사천왕은 마귀나 세상악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놈들을 발로 꽉 밟고 있는 모습인데 이런 자세를 생령좌(生靈座 혹은 정령좌)라 부릅니다.
화엄사의 일주문의 문은 악귀가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의미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고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화엄사 천왕문에는 청나라군과 왜군이 악귀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얼마나 우리의 영토가 짱깨들과 쪽발이에 의해서 유린되고, 우리 백성들이 고초를 겪었으면 사찰에서 이렇게 악귀로 그들을 표현했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갑니다.
화엄사 일주문에 달려 있는 문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고도 합니다. 화엄사는 승병들이 군사훈련을 받았던 곳인데, 정유재란 때 의병과 승병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다가 모두 순절한 슬픈 역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 당시 승병들이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 숭고한 의미가 화엄사 일주문 문짝에 담겨 있다고 합니다. 혹시 화엄사를 가시면, 일주문의 출입문을 손으로 잘 어루어 보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일주문에 있는 지리산 화엄사(智異山 華嚴寺) 편액은 선조의 아들인 의창군 광(珖)의 글씨라 합니다. 자세히 보면 글씨가 참 명필입니다. 의창군의 글씨는 대웅전 편액에도 남아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승군으로 활약하였던 벽암대사(碧巖大師;1575-1660)의 공덕을 기리는 벽암국일도대선사비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금강문, 천왕문, 보제루, 종루
일주문을 지나면 바로 금강문이 나옵니다. 금강문에는 금강역사(金剛力士)와 문수(文殊)·보현(普賢)의 동자상(童子像)이 있습니다. 천왕문은 전면 3칸의 맞배집이며 목각인 사천왕상(木刻四天王像)이 입구를 떡 하니 지키고 있습니다.
금강문
천왕문
화엄사 보제루는 법요식 때 승려나 불교신도들의 집회를 목적으로 지어진 강당 건물이라 합니다. 지금은 화엄사를 찾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 가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보제루에서 눈여겨 봐야할 곳은 ‘그랭이질’이라는 기법을 사용해 바위에 나무를 맞춰 세운 기둥인데, 참 신기하고 특이하게도 잘 세웠습니다.
보제루 옆에는 종루가 있습니다. 종루에는 사물(四物)이 있는데 수생생물을 의미하는 목어, 날짐승을 상징하는 운판, 네발짐승을 뜻하는 법고, 인간의 깨우침을 일컫는 범종이 있습니다.
대웅전과 각황전
대웅전을 가리고 있는 보제루 옆쪽을 빠져나오면 순간적으로 화엄사의 진짜 웅장한 모습을 그대로 보게 됩니다. 큰 마당에는 동쪽과 서쪽에 탑이 있고 중앙에는 대웅전 그리고 또 옆으로 각황전을 보면서 압도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어찌 보면 보제루가 화엄사 중심 가람을 살짝 가리고 있어 순간적으로는 대웅전 마당을 메우고 있는 건물과 석등, 석탑들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돌리며 걸음을 걸으면 장엄한 건물들과 큰 규모의 석탑에 입이 딱 벌어집니다.
화엄사 대웅전
대웅전 우측으로는 영전과 명부전이, 각황전 옆에는 원통전과 나한전이 비켜서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화엄사의 대웅전과 각황전을 배경으로 동서오층석탑(東西五層石塔)과 석등(石燈)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은 정교하고 잘 짜여진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아름답다는 표현만으로도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엄사 각황전
국보 제67호인 구례 화엄사 각황전은 정면 7칸, 측면 5칸의 2층 건물로 얼핏 보면 이 건물이 혹시 대웅전이 아닐까 하는 착각도 듭니다. 그러나 대웅전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매우 크고 균형미가 뛰어난 건물입니다. 각황전 내부에는 3여래불상과 4보살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각황전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듯 단청이 훌러덩 벗겨져 있어 원래 나무의 결이 그대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구례 화엄사를 천년 넘게 밝혀온 국보 제12호 석등이 해체보수에 들어가서 작업이 한참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구례 화엄사를 1,300년 동안 밝혀온 돌로 만든 등, '석등'을 해체하여 보수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석등의 표면 박리와 균열이 심각해지면서 보존처리를 위한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각황전 앞을 지날 때 많은 분들이 석등 보수 작업 중이었습니다.
조선 영조와 각황전에 얽힌 썰
조선 시기 장희빈이 판 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때 여자 문제로 어리버리했던 숙종의 마음이 돌아서면서 새로 숙부인 최 씨가 총애를 받게 되고, 연잉군이 태어나게 됩니다. 숙부인 최 씨는 숙종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 연잉군이 혹시라도 화를 당할까봐 늘 걱정이었고, 부처님께 공덕을 들이면 아들이 무사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최씨는 숙종의 마음을 움직여 각황전을 짓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연잉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이 사람이 바로 '영조'입니다.
구층암(九層庵)
화엄사를 방문하였다면 놓치지 않아야 할 곳이 바로 구층암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각황전과 대웅전을 보고 나면, 와 대단하다 하고 그냥 내려가는 경우가 많은데 구층암도 가까우니 조금만 더 올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구층암은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살려 툇마루 앞의 기둥으로 삼았는데, 정말 특이하고 대단합니다. 자연에 있는 그대로를 건축물에 적용한 것을 보면서 우리 전통사찰의 아낌없는 자연친화적 공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층암 뒤쪽으로 가면 천 명의 부처님을 뵙고 가시기 바랍니다. 바로 '천불보전'입니다.
4사자 3층 석탑과 내려다보는 화엄사 전경
각황전 뒤편으로 조금 경사진 길을 올라가면 또 다른 풍경과 그 유명한 네 마리 사자가 떠 받치고 있는 탑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4사자 3층석탑입니다. 그리 크다고 할 수는 없으나 아주 인상적인 느낌을 주는 석탑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양식이라 합니다. 또한 4사자3층석탑이 있는 장소가 높은 장소이다 보니 아래로 화엄사의 전경이 그대로 보입니다. 사찰을 정면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위에서 살포시 내려다보는 풍경 또한 사뭇 좋기만 합니다.
화엄사를 떠나며
화엄사를 둘러보고 떠나면서 세 동자상이 전하는 법구경 구절을 담아 갑니다.
‘불견, 불문, 불언’, 사람이 살면서 완벽할 수 없지만 셋 중에 하나라도 마음에 두고 지킬 수 있을까 합니다.
세상이 좋고 아름답게 보여야 하는데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판단도 흐려지는 것 같습니다.
구례 꼭 가볼만한 곳, 화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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