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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명 사진작가 (7) - 유진 스미스, W. Eugene Smith

photoguide 2017. 9. 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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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유명한 사진작가를 소개합니다.

Best photographers in the world

 

유진 스미스

W. Eugene Smith

(1918. 12. 20 - 1978. 10. 15)

(미국)

 

 

  

유진 스미스 스토리

 

 

“Photography is a small voice,

at best, but sometimes one photograph,

or a group of them,

can lure our sense of awareness.

 

  "사진은 기껏해야 작은 목소리이지만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나 여러장의 사진이

우리의 인식 감각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유진 스미스는 1918년 미국 캔자스주에서 출생하여 1937년 뉴스위크지 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이후 라이프지의 종군사진가로 사이판, 오키나와 전투를 취재하기도 했다. 그는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부상입고 일시 활동 중단하기도 했으나 1947년 라이프지로 다시 돌아와 활동을 재개합니다.


그는 1951년 '스페인 마을(Spanish Village)'로 U.S 카메라상 수상받았고, 1955년 「매그넘 Magnum」에 가담하여 사진활동을 계속합니다. 1968년《유진 스미스》 사진집을 출판하여 자신의 작품세계를 보다 많이 알리는 한편 1975년 뉴욕 국제사진센터에서 『미나마따병(Minamata)』전을 열어 인간애를 호소하는 사진을 선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유진 스미스는 1978년 애리조나 대학의 사진창조센터에서 사진을 보다 널리 알리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유진 스미스에 대해 좀 더 많이 알아보기

https://www.icp.org/browse/archive/constituents/w-eugene-smith?all/all/all/all/0

 

 

완벽주의 사진의 대명사

사진으로 휴매니즘 실천

 

유진 스미스는  1936년 「라이프(Life)」지가 출판되기 시작하면서 보도사진 전문가로 많은 활동했는데 그 당시 그는 마가렛 버크 화이트,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 등과 함께 전성기를 누립니다. 이것은 1938년부터 1942년까지 그의 사진작품들이 수많은 신문과 잡지를 통해 많이 보도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사진 철학은 완벽주의에 가깝고 매우 까다롭다고 볼 수 있는데,  「라이프」지를 박차고 나와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한 것을 봐도 알 수 있고, 또한 매그넘도 가입하였다가 얼마 안 있다 탈퇴를 한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유진 스미스는 본인의 개성이 강하고 확실한 주장으로 인해 편집자와의 마찰도 많았다고 합니다.

 

유진 스미스는 뉴스위크지에서 일했으나 정해진 포맷의 카메라만 사용하라는 지시를 거부하며 그만 두었고, 이후 1939년부터 일했던 라이프지에서도 편집권 문제로 나옵니다.  그가 「라이프」지를 나온 결정적인 이유도 '알베르트 슈바이처 ' 라는 자신의 작품을 편집가가 입맛대로 선별하여 쓰는 것이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는 슈바이처 박사를 찍을 때의 자신의 의도가 편집자에 의해 수정되었기에 같이 일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보도사진가로 명성

인간 존중의 사진을 찍다

 

18살의 어린 나이로 「뉴스위크」지의 기자로 출발한 유진 스미스는 끝까지 보도사진가로 활동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중 유진 스미스는 보도사진가들 중 한명으로 높게 평가받았는데 이때 그의 나이가 불과 23살이었다는 점에서도 청년 시절부터 그의 사진은 각광을 받았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도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수 많은 전투 장면과 생생한 전쟁터의 현실을 그대로 알렸던 그는 태평양 전쟁의 종군기자로 치열한 현장을 그대로 담아 많은 사람들에게 사진으로 알립니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오끼나와 전투를 찍다가 그만 큰 부상을 당합니다.
 

태평양 전쟁을 취재하면서 1944년 그는 '유일한 생존자'를 촬영하였습니다.  '유일한 생존자'는 미군의 화염방사기 화염으로 거의 초토화된 사이판의 어느 동굴에서 수 많은 일본군 병사들과 민간인들의 시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작은 생명체를 극적으로 구조하는 순간을 담은 것 입니다.

 

Fight for survival: In a July 1944 photograph,

an American Marine lifts a nearly dead infant

from a cave where native islanders had

been hiding during the battle for Saipan.

Wounded, dying infant found

by American soldier in Saipan Mountains

ⓒW. Eugene Smith:

 

 

'유일한 생존자' 라는 사진은 전쟁터에서 숭고한 인간 정신을 존중하는 병사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살상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에서 생명을 구하고자하는 인간의 진정성을 그대로 담은 스토리입니다. 이렇듯 그는 사진을 통한 휴머니스트의 입장을 그대로 보여주었는데, 말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러한 사진철학은 변함이 없습니다.

 

 

Caption from LIFE. "These stern men, enforcers of national law, are Franco's rural police.

They patrol countryside, are feared by people in villages, which also have local police

ⓒW. Eugene Smith—Time & Life Pictures

 

'Spanish Village': W. Eugene Smith's Landmark Photo Essay

 

 

이외에도 그는 1951년 6월 4일자 라이프지에 '스페인 마을'을 찍어 파시스트 프랑코의 독재 아래 힘들어 하는 민중들의 생활상과 감정을 잘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U.S 카메라상을 받게 됩니다. 또한 1954년의 '자비로운 슈바이처'도 유명한 작품으로 남습니다.

 

한편 '낙원의 정원에 이르는 길' (A Walk to Paradise Garden)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을 걸어나가는 꿈같은 사진작품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촬영된 아이들이 바로 유진 스미스의 아이들이라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The walk to Paridise Garden. 1946'

 The children of photographer W. Eugene Smith walk

hand-in-hand in the woods behind his home, 1946.
ⓒW. Eugene Smith — TIME & LIFE Pictures 

  

위 사진은 유진 스미스 최고의 걸작으로 잘 알려진 '낙원의 정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전쟁 중 종군기자로 활동하다가 심각한 상처를 입고 회복 중이던 스미스가 신들린 듯 셔터를 눌렀다고 말한 이 사진은 전쟁이 끝나고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희망이 비치는 곳을 찾아 떠나는 우리의 인간의 모습을 자화상같이 담은 것이라 여겨집니다.

 

 

유진 스미스의 사진 특징

어둡고 깊은 긴장감


그의 사진작품을 보면 사진의 모든 화조가 어둡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유진 스미스가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어둡게 다루기 때문이라 할 수 있는데, 그래서 그의 사진은 보면 압박감과 긴장감 마저 듭니다. 그러나 그의 사진을 보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이겨내고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것을 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인간이 영위하고자 하는 삶 자체를 사진으로 그는 표현했습니다.

그의 사진에는 인간의 아픔과 기다림이 녹아있고,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진정한 인간의 사랑과 휴매니즘을 담고 있습니다.


 

사랑과 휴매니즘을 사진으로 실천

사랑을 영상미로 표현

 

"You can't photograph if you're not in love."

 

그에게 있어 사진은 바로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1971년 그동안의 자신의 사진활동을 마무리하는 사진전을 개최하기도 한 그는 이후 3년간 일본에 머물면서 미나마따(Minamata)병을 심층취재합니다. 미나마따병은 일본 남부의 미나마타시에서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발생된 것으로 이때  사람들이 많은 장애를 겪고 기형아까지 태어나는 불행한 일이 발생됩니다.

 

유진 스미스는 바로 이러한 환경오염으로 고생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사진 한장으로 담아 세상에 알립니다. 이중  '목욕하는 도모꼬'는 태어나면서 미나마따병에 걸린 아이가 식물인간이 되어 어머니에게 안겨 목욕하는 힘든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한 것 입니다. 이 사진은 미나마타병으로 심하게 뒤틀린 딸을 목욕시키고 있는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고귀한 사랑을 애틋하게 영상미로 표현한 것 입니다. 이와 같이 그가 찍는 사진은 다소 어둡고 마음 한편으로 아픈 면이 있지만 '사랑'을 그대로 사진으로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Tomoko Uemura in Her Bath, Minamata (1972),  

 ⓒW. Eugene Smith

 

 

포토에세이의 창시자

포토저널리즘의 신화


유진 스미스는 포토에세이를 처음 시작한 사진작가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의 작품세계는 개성적인 표현을 통해 휴머니즘을 추구하고 있다는데 주목됩니다.

 

"사진은 하나의 작은 목소리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진 스미스는 스스로 이상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닐만큼 현실의 고난과 시련을 뚫고 나가고자 하는 강한 개성을 갖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실천미가 있고 보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입니다. "사진은 기껏해야 작은 목소리이지만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나 여러장의 사진이 우리의 인식 감각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그의 사진 철학을 보더라도 사진을 통해 새로운 자각을 하면서 희망의 세상을 열고자 했다고 하겠습니다.

 

"나는 연민이 넘치는 비판주의 작가이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가장 인간에 긍정적인 사진가라 확신한다. 나는 진실이 세상을 보는 나의 편견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은 매우 달콤했다. 인생을 걸만한 가치가 있었던 일이었다."라고 말한 그는 사진만을 위한 인생을 걷다가 1978년 생을 마감합니다.

 

 

유진 스미스 사진 갤러리

 

 

유진 스미스 사진 명언

Inspirational W. Eugene Smith Quotes About Photography


 

Photography is a small voice, at best, but sometimes one photograph, or a group of them, can lure our sense of awareness.

 

You can't photograph if you're not in love.


My camera, my intentions stopped no man from falling. Nor did they aid him after he had fallen. It could be said that photographs be damned for they bind no wounds. Yet, I reasoned, if my photographs could cause compassionate horror within the viewer, they might also prod the conscience of that viewer into taking action.

 

Hardening of the categories causes art disease.

 

The world just does not fit conveniently into the format of a 35mm camera.

 

Passion is in all great searches and is necessary to all creative endeavors.

 

I try to take what voice I have and I give it to those who don’t have one at all.

 

What use having a great depth of field, if there is not an adequate depth of feeling?

 

I can’t stand these damn shows on museum walls with neat little frames, where you look at the images as if they were pieces of art. I want them to be pieces of life!

 

My photographs at best hold only a small length, but through them I would suggest and criticize and illuminate and try to give compassionate understanding.

 

Never have I found the limits of the photographic potential. Every horizon, upon being reached, reveals another beckoning in the distance. Always, I am on the threshold.

 

I didn’t write the rules. Why would I follow them?

 

The journalistic photographer can have no other than a personal approach; and it is impossible for him to be completely objective. Honest—yes. Objective—no.

 

I am constantly torn between the attitude of the conscientious journalist who is a recorder and interpreter of the facts and of the creative artist who often is necessarily at poetic odds with the literal facts.

 

In music I still prefer the minor key, and in printing I like the light coming from the dark. I like pictures that surmount the darkness, and many of my photographs are that way. It is the way I see photographically. For practical reasons, I think it looks better in print too.

 

I think photojournalism is documentary photography with a purpose.

 

If I can get them to think, get them to feel, get them to see, then I've done about all that I can as a teacher.

 

Available light is any damn light that is available!

 

I've never made any picture, good or bad, without paying for it in emotional turmoil.

 

I would that my photographs might be, not the coverage of a news event, but an indictment of war.

 

The first word I would remove from the folklore of journalism is the word objective.

 

With considerable soul searching, that to the utmost of my ability, I have let truth be the prejudice.

 

I would that my photographs might be, not the coverage of a news event, but an indictment of war - the brutal corrupting viciousness of its doing to the minds and bodies of men; and, that my photographs might be a powerful emotional catalyst to the reasoning which would help this vile and criminal stupidity from beginning again.

 

My pictures are complex and so am I. When I am almost symbolistic in writing, there is a more limiting difference’s of accepting, while I can be even more complex in the photographs and people can usually accept them within the framework of their own limitations or lack of limitations – there is no dictionary meaning… they can look up for the photographic image and allow it to confuse them.

 

Negatives are the notebooks, the jottings, the false starts, the whims, the poor drafts, and the good draft but never the completed version of the work The print and a proper one is the only completed photograph, whether it is specifically shaded for reproduction, or for a museum wall.

 

What's the best type of light? Why that would be available light... and by available light I mean any damn light is available.

  

I was after a set of pictures, so that when people looked at them they would say, ‘This is war’-that the people who were in the war would believe that I had truthfully captured what they had gone through I worked in the framework that war is horrible. I want to carry on what I have tried to do in these pictures. War is a concentrated unit in the world and these things are clearly and cleanly seen. Things like race prejudice, poverty, hatred and bigotry are sprawling things in civilian life, and not so easy to define as war.

 

Many claim I am a photographer of tragedy. In the greater sense I am not, for though I often photograph where the tragic emotion is present, the result is almost invariably affirm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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