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사진작가 (27) 찰스 클라이드 에베츠 Charles Clyde Ebbets, 마천루에서 점심식사 Lunch atop a skyscraper 를 찍다
세계에서 유명한 사진작가를 소개합니다.
Best photographers in the world
찰스 에베츠 CHARLES C. EBBETS
이 사진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높은 곳에서 거대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섬세한 여유?
이 모든 것이 뉴욕의 거리보다 더 높은 곳에서 일어났다는 사실?
이 잘생긴 남자는 미국인 사진작가 찰스 C. 에베츠 입니다.
1932년 《런치타임 탑 어 마천루》에서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를 포착한 그는 2003년까지 공식적으로 사진작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70년 이상 동안 뉴욕의 록펠러 센터를 건설하는 동안 찍은 유명한 이미지는 그의 다른 많은 고층 건물 사진들과 함께 베트먼 기록보관소에 의해 "사진작가 미상"으로 오인되어 왔다.
70년 이상 동안, 미국 사진의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 중 하나를 쓴 작가는 미스터리로 남아왔습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알고 있지만, 렌즈 뒤에 있는 남자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 이름보다 사진이 더 유명한 사진작가
이름 보다 사진으로 더 유명한 사진작가
에비츠는 1905년 8월 18일, 미국 앨라배마 개즈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덟 살 때 동네 약국에서 첫 번째 카메라를 샀다고 한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첫 번째 카메라였다. 그러나 그 당시 카메라는 사실 아주 귀한 물건이고 쉽사리 접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에비츠는 비교적 부유한 환경 속에서 성장을 하지 않았나 싶다.
에비츠는 1920년대 세인트루이스에서 사진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초기에는 영화 작업에도 참여하기도 했으며, 1924년에 그는 몇 편의 영화에서 "월리 레니"로 알려진 모험가 아프리카 사냥꾼 역할을 연기하며 짧은 연기 생활을 했다. 그는 특이하게도 사진을 촬영하는 노력 외에도 1920년대 내내 조종사, 윙워커, 자동차 경주 선수, 레슬링 선수, 그리고 사냥꾼을 포함한 많은 모험적인 직업을 가졌던 아주 이색적인 인물입니다. 그래서 사진만 찍은 사진작가로 쉽게 인정받기가 어려웠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잭 뎀시의 공식 스태프 사진작가, 마이애미 데일리 뉴스의 스태프 사진작가,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였다.
Men on a Beam
그는 미국의 사진작가로 마천루 꼭대기에서 점심을 먹는 상징적인 사진을 찍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찰스 에베츠가 1932년 에 맨해튼 상공에서 촬영한 11명의 철강 노동자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 사진이 바로 그 유명한 "Men on a Beam" 이미지들이다.
미국 사진계의 아이콘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유명한 "맨 온 어 빔" 사진의 작가로서 에비츠는 여전히 "익명"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 그가 죽은 후 거의 30년 동안 사진 유산들은 그의 미망인 집의 구석진 곳에 숨겨져 있던 상자 안에서 서서히 부패되어 가기 시작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인쇄물과 네거티브 사진들 사이에 흩어져 있는 것은 그의 삶의 잔해들이었다.
에베츠는 마이애미 프레스 포토그래퍼 협회를 창설한 사람이기도 하며 AP통신의 초기 남부 공식 사진작가 중 한 명이었고, 항공과 홍보 업무를 개척했다. 또한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와 세미놀 인디언 거주자들의 사진을 수천 장이나 찍었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하고 많은 사진활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1978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비교적 무명으로 죽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고 그의 작품을 세상에 다시 소개하기 위해 철강노동자 11명의 '맨 온 어빔' 이미지 이면의 놀라운 사실들뿐만 아니라 그의 캐릭터와 사진작가로서의 그의 선구적인 업적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좀 더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도 공식적으로 사진작가로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마천루에서 점심식사
우리는 지금 "점심시간 고층빌딩 꼭대기"라는 이 사진에 열광하고 그리고 놀라워합니다.
높은 고층빌딩 공사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담뱃불을 빌리고 태연자약하게 동네 벤치에 앉은듯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마천루에서 점심식사( Lunch atop a skyscraper)'라는 이 사진은 유명한 예술가와 많은 사진작가들에 의해 계속해서 모방되고 재현되었지만, 포토샵 이전 시대에 찍은 이 사진은 조작도 없고 아무것도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촬영작품이라는 점에 또한 경탄합니다. 이 사진 속 어딘가에서 가짜의 단서나 또한 고친 흔적을 찾으려하나 누구도도 못 찾았습니다. 이 사진은 New York Herald Tribune에 사진이 실리게 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이 되었다.
이 사진을 찍은 빌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오래되었습니다. 높이 259미터에 70층짜리 건물인 제너럴 일렉트릭 빌딩은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록펠러 센터의 중심 건물로 뉴욕에서 9번째, 미국에서 32번째로 높은 빌딩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건물은 1933년에 완공됐습니다.
바로 지금 이 사진이 완공을 몇 개월 앞두고 69층 높이에서 찍은 것이라니 대단합니다. 그때는 아마 지금과 같이 안전장치도 없이 일을 한 것 같은데, 사진을 찍은 사람이나 사진에 찍힌 사람이나 모두 강심장이라 여겨집니다.
이 사진을 보면 그 당시 미국 노동자의 고단하고 강철같은 삶을 잘 표현했다고 하지만 지금 보면 안전장치도 없이 하루 하루를 연명해 나가기 위해 빌딩에 매딜린 슬픈 운명의 사람들을 인상적으로 포착한 것이기도 합니다. 좌우지간 이 사진은 누가 찍었는지도 모른다면서 이후 이후 많은 패러디물이 나올 정도로 불쌍한 현대 노동자의 삶을 대표하는 사진으로 알려집니다.
단독작품인가? 아닌가?
에베츠의 작품으로 결국 인정
위 사진에서 보듯 에비츠는 그 자신이 대담무쌍한 인물인듯 아무런 꺼리낌 없이 고층건물 공사장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는 1920년대 중반 헐리우드에서 스턴트맨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아주 모험적인 작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가 27세가 되었을 때, 에베츠는 록펠러 센터의 개발을 위한 사진 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에베츠가 RCA 빌딩 69층에 있는 상징적인 "Lunch top Skyscruilder"를 지난 몇 달 동안의 공사 기간 동안 찍은 것도 이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가 그렇게 멋지게 찍은 사진작품을 제대로 인정받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요?
그것은 고층빌딩에서의 사진촬영이 여러 명의 사진작가들이 협력했다고 주장되었기에 그가 단독으로 그렇게 찍었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아마도 사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진작가에 의해 그날 찍힌 찰스 자신의 사진 몇 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가 이것을 비난하겠습니까? 고층빌딩 공사 현장 꼭대기 위 아래에서 에베츠는 매우 사진을 잘 찍었습니다. "마천루에서 점심식사"가 지난 20년 동안 재발견되어 사진작품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이후로, 다른 사진작가들은 그것의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기능공이 아닌 예술가로 재조명
새롭게 재평가된 유명한 사진작가
이 사진은 촬영 직후 뉴욕 헤럴드 트리뷴에 처음 실렸지만, 훨씬 후에야 인정을 받았다. 그 당시, 사진작가들은 예술가로 여겨지지 않았고, 그들은 단지 기계 뒤에 있는 조작자들일 뿐이라는 인식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고용되면 요청한 것을 찍고, 그 일을 계속했는데 대개 이렇게 찍은 이미지는 그냥 어느 기록 보관소에 기록되지 않은 채 철해진 것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에베츠는 사진작가라기 보다는 그 당시 상황에 따라 사진을 찍어준 기능사 정도로 밖에 인정을 받지는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그의 진가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렇게 보입니다.
결국 아버지가 예술가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에베츠 가족은 록펠러 센터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청구서 원본, 그의 개인 스크랩북에서 발견된 신문 기사의 사본, 그리고 11명의 직공들이 앉아 있는 작품사진인 그의 원본 유리 네거티브를 발견했다. 그것들은 지금 서부 펜실베니아에 있는 냉장소에 보관되어 있으며, 더 이상 썩고 썩는 것을 막기 위해 방지에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사진작가로 유명하지도 않았지만, 그가 찍은 사진들로 인해 사후에야 유명한 사진작가로 알려진 에베츠는 지금 고인이 되었어도 자신이 재평가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