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가을 / 가을 시를 읽다
시간은 또 속절없이 흘러 어느새 가을입니다. 입추도 벌써 지났고,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때입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아침과 저녁에는 제법 찬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옵니다. 본래 계절은 바뀌는 것이지만 항상 이렇게 계절을 달리할 때면 사람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요. 가을은 걷기에도 좋은 때입니다. 이런 때 가을 햇살이 좋은 어느 공원의 벤치에서 좋은 글과 가을 시 한편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인생으로 비유한다면 봄이 소년기, 여름은 청년기, 가을은 장년기, 겨울은 노년기라 할 수 있는데, 금년 한해를 어찌 보냈는지 곰곰히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네요.
가을은 생각을 많이 하게 때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가을은 시를 읽기에도 좋은 때 입니다.
가을에 읽기 좋은 시들과 함께 사진을 올립니다.
가을날
(김현성)
가을 햇살이 좋은 오후
내 사랑은 한때 여름 햇살 같았던 날이 있었네
푸르던 날이 물드는 날
나는 붉은물이 든 잎사귀가 되어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을 해야지
그대 오는 길목에서
불 붙은 산이 되어야지
그래서 다 타 버릴 때까지
햇살이 걷는 오후를 살아야지
그렇게 맹세하던 날들이 있었네
그런 맹세만으로
나는 가을 노을이 되었네
그 노을이 지는 것을 아무도 보지 않았네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익어가는 가을
(이해인)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어가네
가을이 깊을 수록
우리도 익어가네
익어가는 날들은
행복하여라
말이 필요 없는
고요한 기도
가을엔
너도 나도 익어서
사랑이 되네
가을 엽서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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