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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드는 것 - 안도현, 간장 게장 못 먹는 시

by photoguide 2023.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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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게장, 듣기만 하여도 그 얼마나 침 넘어가는 소리인가?

 

많은 사람들은 맛있는 간장게장을 먹으려고 맛집을 찾아다닙니다.

간장게장이 주는 감칠맛에 공기 밥 한 그릇 뚝딱 먹는 사람들은 많지만 과연 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게
간장게장 시 ⓒPhotoGuide.com

 

 

안도현 시인은 게의 입장에서 시감을 느꼈는지, 정말로 게가 스스로 간장게장이 되는 슬픈 상황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달합니다. 아마도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라는 시를 읽어 보면, 맛있게 먹던 간장게장을 더 이상은 먹기가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간장게장을 앞으로도 맛있게 먹을 분은 '스며드는 것'이라는 시를 스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게의 입장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신다면,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생명은 소중하고 자식 사랑도 애틋한 것은 자연의 이치이건만 이렇듯 '게'의 슬픔을 표현한 시는 처음 보았습니다.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스며드는것-간장게장-시
스며드는 것 안도현 ⓒPhotoGuide.com

 

간장게장 못 먹게 하는 시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 시를 읽고도 간장게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있을 것입니다. 까짓것 게 한 마리가 간장게장 되는 것에 뭐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간장게장을 맛있게 먹지만 실제로 꽃게가 간장에 절여지기 전에 고통을 생각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필사적으로 낮게 웅크렸으리라는 것을 상상한 시인의 상상력은 놀랐기만 하다.

간장게장은 다른 음식과  다르게 많은 시간을 게의 살에 짠 간장이 스며들어 만들어지는 음식이다. 그러다 보니 게의 입장에서는 단숨에 죽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고통을 느끼면서 죽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게의 체념과 고통, 안쓰러움, 애틋함 등이  간장게장에 듬뿍 담겨 있다.

 

 

스며드는 것은 소리 없이 찾아오는 것이다.

침묵과 함께 간장이 자신의 몸이 잠식돼 나가면서, 엄마 게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작가의 생각은 슬프다 못해 애절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울컥하는 것이다.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는 엄마게는 자식들인 알에게 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긴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아기들아,

무서워하지 마라,

원래 밤은 컴컴한 것이야

그냥 어둠이 찾아오는 것이니

불 끄고 엄마의 품에서 그냥 이대로 잠들자

 PhotoGuide.com

 

 

세상은 살면서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나는 열심히 살고자 하지만, 나는 어느새 이 세상의 '게' 같은 존재일 수 있다.

'개'가 아니고 '게'입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스며드는 것'들이 오면 약한 개인은 그냥 어찌할 수 없다.

차라리 세상에 '게'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런 고통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삶이 소중하니 마지막 가는 길에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이 시를 읽고 앞으로 간장게장을 맛있게 먹을 수는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가 자꾸만 생각나면서 게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기에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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