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사진작가 (13) 케빈 카터, Kevin Carter 독소리와 소녀 사진

세계에서 유명한 사진작가를 소개합니다.

Best photographers in the world


케빈 카터

Kevin Carter

(September 13, 1960~ July 27, 1994)

(남아공화국)

 

Awards: Pulitzer Prize for Feature Photography

Best photography of Kevin Carter, But he is no more

 

사진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ebecca_Hearfield_Photographing_Kevin_Carter.jpg

 

 

케빈 카터 (Kevin Carter)는 남아프리카의 포토 저널리스트이자 뱅뱅클럽(Bang-Bang Club)의 회원이었습니다. 그는 수단에서 1993년 기근을 묘사한 사진에 대한 퓰리처상을 수상했습니다만, 이후 그는 33세의 젊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휴머니즘 보도사진과

젊은 사진작가의 죽음

 

 

 “I'm really, really sorry. The pain of life overrides the joy to the point that joy does not exist. ...depressed ... without phone ... money for rent ... money for child support ... money for debts ... money!!! ... I am haunted by the vivid memories of killings & corpses & anger & pain ... of starving or wounded children, of trigger-happy madmen, often police, of killer executioners ... I have gone to join Ken [recently deceased colleague Ken Oosterbroek] if I am that lucky.

 


케빈 카터(Kevin Carter)는 남아프리카 요하네스 버그에서 태어나 중산층의 백인 전용 지역에서 자라 성장을 했습니다. 그는 어렸을때 자신이 사는 지역내에서 불법적으로 살고있는 흑인들을 체포하는 경찰의 급습을 보기도 하면서, 남아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됩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케빈 카터는 약사가 되려고도 했으며 또한 육군 보병으로 근무하기도 했는데 이후 공군에 복무하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인 1980년에 그는 흑인 들러리 웨이터가 모욕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 사람을 변호하려다 다른 군인들에게 심하게 맞은 적도 있습니다. 이후 그는 결근하여 "David"이라는 라디오 디스크 자키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머지 병역 의무를 다해야 했습니다.

 

그가 사진기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1983년 프리토리아에서 교회 거리 폭파사건을 목격 한 후 부터라고 합니다.

 

케빈 카터는 1983년에 주말스포츠 사진가로 일하기 시작했고 1984년에 그는 요하네스버그 스타를 위해 일하러 갔다가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의 잔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당시 케빈 카터는 남아공의 흑인 아프리카인들에게 행한 "목 둘레 사냥(Necklacing)"을 사진을 최초로 찍어 알리기도 합니다. 이것은 죄인으로 잡힌 흑인을 묶어 길에 끌고 다니다가 기름을 붓고 화형에 처하는 잔인한 인민재판과 같은 것인데, 그는 현장 취재로 이 사진을 직접 올려 기사화하여 당시로서는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파르트헤이드(백인우월주의에 따른 인종차별정책과 제도)와의 투쟁을 사진으로 기록해 유명해집니다. 또한 케빈 카터는 아프리카의 분쟁과 갈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남아공에서 일어난 백인과 흑인간의 폭력투쟁을 카메라에 담기도 합니다.

 

케빈 카터는 1991년도에 퓰리처상을 받은 AP의 그레그 마리노비치, 요하네스버그 스타의 켄 오스터브로스코, 프리랜서인 주앙 실바와 팀을 짜서 아프리카 부족간의 폭력적 충돌을 촬영하기도 했는데 이 팀이 너무 유명해서 이들 4명에게는 뱅뱅클럽이라는 닉네임이 주어집니다.

 

사진출처 : https://obagageiro.wordpress.com/2013/12/19/o-real-e-surreal-bang-bang-club/

 

뱅뱅클럽의 멤버들, 좌측에서 부터 그레그 마리노비치(Greg Marinovich), 켄 오스터브로스코(Ken Oosterbroek), 주앙 실바(João Silva) 그리고 맨 끝에 지팡이를 들고 앉은 사람이 바로 케빈 카터(Kevin Carter)입니다.

 

 

독수리와 소녀 사진

1994년 퓰리처상 수상

그리고, 그의 자살

 

 

 ©Kevin Carter / The Vulture and the Little Girl

 

1993년 3월 유엔을 통해 케빈 카터는 수단을 방문 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는 이곳에서 유명한 사진을 찍게 됩니다.

 

바로 1994년 퓰리처상을 받은  '독수리와 어린 소녀(The Vulture and the Little Girl)'라는 사진입니다.

 

앙상하게 말라 굶어 죽을 것 같은 어린 소녀가 고개를 힘 없이 떨구고 있는데 독수리는 웅크리고 그 소녀가 마치 바로 죽으면 덤벼들 것 같은 자세를 보이는 사진입니다.

 

땡볕이 내리쬐는 땅바닥에 주저 앉은 소녀와 본능적으로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는듯한 독수리의 사진인데 이것은 수단 아요드의 지역에 있는 식량배급소 근처에서 촬영된 것입니다.

 

'독소리와 소녀'라는 사진은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수단의 비참한 현실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는데 이후 실상이 알려지면서 대규모 구호가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사진은 New York Times에 매각되었고 1993년 3월 26일에 처음 공개되었으며 전세계에 배포되었습니다. 그런데 수 많은 사람들이 신문사에 연락하여 그 소녀가 어떻게 되었는가?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진은 세계에 유명한 사진으로 떠 올랐지만 보도윤리에 대한 논란을 가져 왔습니다.

 

바로 죽음에 직면한 소녀를 즉시 구하지 않고, 사진을 먼저 찍은 케빈 카터의 행동이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질타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소녀와 독수리' 사진이 실린 신문 기사에는 사진의 내용보다는 수단의 기아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보였기에 추가적인 설명이 없는 그의 사진은 독자들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하였고, 이 사진을 찍은 포토그래퍼는 기본적인 인간성도 없는 놈이 아니냐는 식으로 매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케빈 카터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는 자신의 사진작품만을 찍기 위해 소녀를 독수리로 부터 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일까요?

 

그리고 그러한 논란에 따른 죄의식으로 케빈 카터는 목숨을 끊어야만 했을까요?

 

알고보면 '독수리와 소녀' 사진을 찍을 당시에 아이는 그렇게 그냥 방치된 상태가 아니라 그 아이의 엄마가 잠시 다른 곳으로 일을 보러가서 바로 돌아오지 않기에 그 사진을 찍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그 소녀가 위험에 처해지도록 놔둔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자마자 바로 독수리를 쫓아냈습니다.  또한 케빈은 그러한 비참한 상태에 놓인 소녀의 사진을 찍고 울부짖으며 '하느님'을 찾기도 했답니다. 자신이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비참한 현실에 직면한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을 그대로 그는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케빈 카터는 남아공에서 비인간적인 인종차별정책을 사진으로 고발할 정도의 휴매니스트 사진작가인데 사진만 찍는데 급급했던 것 아니냐는 그에 대한 비난은 어찌보면 정당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휴먼다큐멘터리 작가의 고통

진정한 인간애에 대한 번민

 

 

1994년 '독수리와 소녀'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받고 얼마되지 않아 석달뒤에 그는 자살을 합니다.

 

그는 자살을 하기 전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삶의 고통은 즐거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쁨을 무시한다.

우울하고... 전화 없이 ... 임대료 ... 자녀 양육비 ... 부채를위한 돈 ... 돈 !!! ...

나는 살인 및 시체와 분노와 고통의 생생한 기억에 시달리고 있다 ...

굶주리고 상처 입은 아이들, 방아쇠를 당기는 행복한 광인, 종종 경찰, 살인자 집행자의 ...

나는 최근에 Ken에 가입했다. (최근 사망한 동료 Ken Oosterbroek를 지칭하며, 자신도 그의 뒤를 따를 것이라는 것을 암시)

그게 행운이다.

 

그의 유서가 된 내용의 일부이지만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꼭 하나의 이유로 '독수리와 소녀' 사진의 비난으로 인한 것이 주된 것이라기 보다는 그가 그동안 보도 사진작가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숱한 고민과 번뇌가 그로 하여금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유서의 끝에 최근에 죽은 켄이라는 동료에 대한 죄책감과 연민도 함께 했으리라 보이면서 삶을 살아가면서 고통이 더 크게 느껴졌기에 그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나 합니다.

 

케빈 카터의 '독수리와 소녀' 사진을 보고 그를 비난했던 사람들은 그의 사진 한장만 보고 그가 잘못된 사진작가라는 비판을 하기이전에 정말로 진정한 휴매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보도사진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세상을 바로 알리려 했고, 보도사진가로 활동을 하였지만 그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 이상 지키기 힘들만큼 인간 내면에 깊은 슬픔과 상처를 지니고 있었던 갸날픈 심성의 영혼이었던 것입니다.

 

케빈 카터의 작품과 생의 마감에 대해 일부에서는 마치 달랑 사진 한장 잘못 찍고 그 비난으로 마지못해 죽음을 선택했다는 식으로 종종 언론이나 기사에 회자되고는 하는데 좀 더 그의 생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타임지에 보도된 케빈 카터의 기사를 더 읽기 원하시다면...

 The Life and Death of Kevin Ca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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