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의 짧은 시들을 모은 <순간의 꽃>이라는 시집이 있습니다.
이 시집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한 순간 순간에 있어 느끼는 감정과 성찰을 그대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길지는 않지만, 굉장히 짧은 단어의 연결로 이렇게 통찰력 있게 우리의 삶의 의미를 시로 만들었다는데 놀랍고 고은 시인의 깊은 철학과 시적 감각을 알 수 있습니다.
고은 시인의 작은 시 하나 하나가 미사여구를 통한 표현이 아니라 나무, 눈송이, 꽃 등과 같이 자연 속에서 우리가 늘 함께 그대로 접하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기에 더 진솔하고 간결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순간의 꽃
고은 시인은 담담하게 우리가 일상에서 보이는 작은 것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전해줍니다.
화려한 컬러사진으로 세상을 찍기보다는, 마치 옛날 흑백 필름사진과 같이 간결하게 시를 쓴 것 같습니다.
시인은 아주 작은 순간도 아쉬워하며 글을 씁니다.
ⓒPhotoGuide.com Korea Photos
고은 시인
짧은 시
#
누우면 끝장이다
앓는 짐승이
필사적으로
서 있는 하루
오늘도 이 세상의 그런 하루였단다 숙아
#
이 세상이란
여기 나비 노니는데
저기 거미집 있네
#
고양이도 퇴화된 맹수이다
개도 퇴화된 맹수이다
나도 퇴화된 맹수이다
원시에서 너무 멀리 와버렸다
우리들의 오늘
잔꾀만 남아
#
어쩌자고 이렇게 큰 하늘인가
나는 달랑 혼자인데
#
마당에서 눈 내리고
방 안에서 모르네.
#
저 매미 울음소리
10년 혹은 15년이나
땅속에 있다 나온 울음소리라네
감사하게나.
#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더라.
#
저 골목 오르막길
오순도순
거기
가난한 집의 행복이 정녕 행복이니라.
#
어쩌자고 이렇게 큰 하늘인가
나는 달랑 혼자인데
#
친구를 가져보아라.
적을 안다.
적을 가져보아라
친구를 안다.
이 무슨 장난인가.
#
이런 날이 있었다.
길 물어볼 사람 없어서
소나무 가지 하나
길게 뻗어나간 쪽으로 갔다.
찾던 길이었다.
#
나는 내일의 나를 모르고 살고 있다.
술 어지간히 취한 밤
번개 쳐
그런 내가 세상에 드러나버렸다.
#
저 어마어마한 회장님 댁
거지에게는 절망이고
도둑에게는 희망이다.
#
내일 나는 서울 인사동에서
대구의 이동순을 만날 것이다.
내일 나는 공도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치고
저녁때는 읽다 만 몽골문화사를 읽을 것이다.
내일 나는 오늘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칠 것이다.
추운 배추밭처럼
이런 예정들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나
내일이란 벌써 오늘이다.
#
나는 고향에서
고국에서
아주 멀리 떠난 사람을 존경한다.
혼자서 시조가 되는 삶만이
다른 삶을 모방하지 않는다.
스무 살 고주몽
#
자비라는 건
정이야.
정 없이
도 있다고?
그런 도 깨쳐 무슨 좀도둑질하려나.
#
사람들은 이야기함으로써
사람이다.
어이 나비 타이 신사!
그래 졸지 말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좀 해보아.
#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누구와 만나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솜구름 널린 하늘이더라
# 고은 # 시인 고은 # 순간의 꽃 # 끝장이다 고은 # 짧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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