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새로 나가기 시작한 사무실에서 아주 오래된 책이 책꽂이 한편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누가 이곳에 가져다 놨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듯 합니다.
얼핏보면 책제목도 잘 보이지 않아 관심있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무슨 책인지도 모를 것 같기도 합니다.
하얀 표지에 한자로 책 모퉁이 아래 제목이 있습니다.
'현대문학사기획편집'이라고 쓰여진 것 같은데, 너무 오래 되어서인지 책 제목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커피 한 잔을 타고 책을 사무실 책상에 올려 놓고 찬찬히 보았습니다.
알고보니 우리나라의 아주 오래된 시인들의 작품을 집대성한 시집입니다.
책은 너무 낡고 헐어서 자칫 잘못하면 종이가 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책에서 풍기는 아주 오래된 특유의 종이 냄새가 물씬 납니다. 이 책을 요새 보는 젊은 사람들이 보면 한자도 너무 많고 읽기도 세로식이라 관심이 없어 했는지도 모를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가로식 읽기가 보편화 되었지만, 80년대 이전에는 신문이나 책들 모두 세로 읽기가 많았습니다.
낡고 오래된 시집이 어쩌면 더 운치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과 같이 세련된 표지에 날렵한 글씨체로 잘 포장된 시집보다는 둔탁하지만 은은한 풍미가 있어 보이는 옛날 고서와 같은 시집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와 같아 보입니다.
많은 시인들의 이름이 보입니다.
그중 특히 눈길을 끄는 시인은 단연 윤동주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작품들이 쫙 실려 있습니다.
서시, 자화상, 소년, 병원, 또 태초의 아침, 무서운 시간, 십자가, 슬픈 족속, 또 다른 밤, 별헤는 밤, 흐르는 거리....
진한 커피향과 함께 오래된 책에서 풍기는 향기가 어우러지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윤동주 시인의 작품들을 봅니다.
서시는 윤동주가 1941년 11월 20일에 창작한 작품으로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1948)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시는 윤동주의 생애와 시의 전모를 단적으로 암시해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라 합니다.
아마도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면, 떠 오르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서시'가 아닐까 합니다.
윤동주 서시
죽는 날까지 한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가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겠다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별헤는밤 전문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서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윤동주에 관한 이야기....
윤동주는 히라누마 도주(平沼東柱)라는 일본식 이름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창씨 개명이라는 굴욕적인 상황을 맞이하면서 일본에 공부를 하러가는 학생들에게 일본식 이름을 써야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문학관을 이해하려면 그 당시 우리나라가 처해져 있었던 비극적 상황도 인식해야 합니다.
1941년 광기에 빠진 일본은 더욱 한국을 식민지배에 박차를 가할 때, 이러한 야만의 시간을 겪어야 했던 순수한 청년은 고뇌합니다.
그래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은 쉽게 쓰여진 시 같지만 결코 쉽지 않으며 우리의 역사에 있어 슬픈 자화상 같은 시이기도 합니다.
자책과 회한의 감정이 느껴지기도 하고, 안타깝고 비탄스럽기도 한 시감은 이제 시대를 떠나 우리에게 늘 함께 합니다.
책의 끝 뒷편을 보니
인쇄 발행된 때가 1976년입니다.
그때 이 책 판매 가격은 1,500원이었는데,
그 당시 다방에서 커피 한잔 가격이
100원도 안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략 요즈음 화폐가치로 책 가격을 환산할 수 있습니다.
책 인세를 표시한 도장이 찍혀 있는 곳 아래
출판사 주소가 있는데
안국동이라 적혀 있네요.
인사동, 안국동 모두 저에게는 친근한 곳입니다.
오래된 장소, 오래된 책들
세월이 지나가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찾아가보고 싶고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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