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사진작가 (20) 도로시아 랭, Dorothea Lange, 20세기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로 미국 대공황 시기에 암울한 시대를 빛으로 그

세계에서 유명한 사진작가를 소개합니다.

Best photographers in the world

 

 

Dorothea Lange

 


도로시아 랭

Dorothea Lange

 

그녀는 보는 시선을 통해 사진의 영향력을 넓힌 다큐멘터리 사진의 선구자라 하겠다. 도로시아 랭은 미국 대공황을 겪는 이민자, 2차 세계대전 일본인 전쟁포로 등 시대를 대표하는 군상을 사실적인 시선으로 강렬하게 묘사하며 1950년대 미국의 정치, 사회를 표현하였다. 

 

도로테아 랭은 미국 뉴저지 주 호보켄(Hoboken)에서 ) 태어나, 미국 대공황 시기에 실업자들을 빛으로 묘사하며 기록적인 저널리즘적 사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95년 5월 26일 출생

1965년 10월 11일 사망

랭은 클래런스 H 밑에서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화이트, 포토세리세션 그룹의 일원입니다. 

1918년 그녀는 세계일주를 결심했고, 사진을 팔면서 돈을 벌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돈은 바닥났고, 그녀는 그곳에 정착하여 사진 스튜디오에 일자리를 얻었다.

 

랭의 인생과 사진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 인물에 투영


미국 대공황 때, 랭은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배회하는 실업자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 남성들의 절박한 상태를 보여주는 화이트 엔젤 브레드라인(1932년)과 같은 사진들이 공개적으로 전시되었고 대중과 다른 사진작가들, 특히 F.64 그룹의 멤버들로부터 즉각적인 인정을 받았다.

 

 

White Angel Bread Line, San Francisco. 1933. Dorothea Lange. Gelatin silver print. Collection of Oakland Museum of California. Gift of Paul S. Taylor. 이 사진은 불경기 때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한 수프 주방의 빵줄이다. 화이트 엔젤로 알려진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부유한 미망인 로이스 조던은 가난한 사람들과 배고픈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수프 주방을 설립했습니다. 외부 자금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조던은 3년 동안 백만 명 이상의 굶주린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1932년 뉴욕 거리에는 따뜻한 스프 한 그릇을 배급받기 위해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줄을 섰고 거리의 노점상은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중부의 공업 중심지 시카고도 그러하였다. 1929년 10월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하면서 은행이 먼저 연쇄 도산을 일으켰고 불황은 건설업, 농업을 무너뜨리고 조선업과 광업, 또 목재업에 타격을 가했다. 이때 미국은 거의 경제가 멘붕상태였다. 사람들은 집도 일자리도 빵도 잃어갔다. 빙 크로스비가 부르는 노래 “형, 한 푼만 주겠어?” 가 1932년의 히트곡이었다니, 그 시절의 어려움이 어때 했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한편 미국 정부는 경제 회복과 고용 증대가 우선 급했지만 어려운 시대를 맞아 이 시기를 기록해야 한다는 감각도 보였다. 2차 대전 후 번영 속에서도 미국민이 그 시절을 잊지 않는 것은 그렇게 해서 수집된 많은 자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 도서관 소장품인 16만장의 네거티브 필름이 그러한 자료들인데, 이러한 역사적인 사진자료를 만든 것이 바로 도로시아 랭이다. 

 

 

Dorothea Lange: Migrant Mother, Nipomo, California Migrant Mother, Nipomo, California, photograph by Dorothea Lange, 1936; in the Library of Congress, Washington, D.C. Library of Congress, Washington, D.C. (neg. no. LC-DIG-fsa-8b29516)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이민자 어머니, 니포모, 캘리포니아(Migrant Mother, Nipomo, California)  1936 © 도로시아 레인지 콜렉션,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미술관(The Dorothea Lange Collection, the Oakland Museum of California )

 

 

도로시아 랭의 사진, [이주민 엄마(Migrant Mother)]는 대공황…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이다. 주름이 파인 어느 여성의 얼굴과 목, 상반신이 전면에 보이고 어린아이들이 그 목과 어깨를 둘러싼 모습은 미국이 당시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도로시아 랭의 사진은 생활공간에 큰 역점을 두지는 않았다. 오히려 생활공간, 배경 등은 과감히 생략시키고 인물중심으로 사진을 촬영하였다. 랭은 그들의 얼굴에 그 모든 상황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랭은 클로즈업 수법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특히 클로즈업할 때 그들의 눈빛이 카메라로 향하도록 하여 사진의 모델이 되는 사람과 후에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마주치게 촬영하여 더욱 깊은 감동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녀의 사진은 인물이 풍기는 느낌만으로도 시대상을 읽게 하는 사진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랭은 사람들의 삶과 느낌을 표출하는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독특한 시선으로 새로운 다큐멘타리의 사진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FSA에서 본격 사진활동

대공황 시기를 역사로 기록

노동자의 인물을 생생하게 묘사

 

미국 여성들의 사진 활동은 이미 1차 세계대전에서 그녀들이 종군사진 기자로 활동하면서 일부 인정을 받기 시작했으나 사실상 랭은 처음부터 그리 유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미국 동부의 뉴저지에서 자라다가 어머니의 뉴욕 취업으로 처음에는 이스트사이드에서 다음에는 맨해튼에서 학교를 다녔다. 더우기 그녀는 어려서 7살에 소아마비에 걸린 후 내내 오른편 다리를 절만큼 불편한 신체적 한계도 있었다. 도로시아는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모두 혼자 겪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녀는 학교를 마친 후 카메라가 없는 채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여러 스튜디오를 전전하면서 사진을 배웠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사진학과 강의를 들었을 뿐 거의 독학 수준이라니, 그녀의 사진의 재능은 아마 천부적인 것 같다. 

 

랭의 인생은 시대적 상황이 어려운 면도 있었지만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계속 이어진 느낌도 든다. 그녀는 20대 후반인 1918년 도로시아는 사진 일을 찾아 친구와 함께 샌프란시스코까지 왔다. 미국 서부의 예술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는 후원자를 만나 스튜디오를 차릴 수 있었다.

 

1920년에는 연상인 화가 메이너드 딕슨과 결혼하였고 두 아들을 두고 “온 힘을 다 해” 초상 사진 작업에 열중했지만 1932년이 되면서 실업과 불황의 그늘 아래 두 사람은 관계가 악화됐다. 랭은 이때 농업과 노동에 관심이 많은 버클리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 폴 테일러를 알게 되었고, 테일러는 캘리포니아의 긴급구호관리 현장 책임자로 북서부에서 몰려드는 이재민들의 생활조건을 조사하는 과제를 맡고 있었다. 하루 수천명의 이재민이 먼지 폭풍을 피해 캘리포니아로 유입되는 혼돈의 시기에 1934년~35년에 테일러의 강의를 듣던 랭은 테일러의 팀에 합류하여 사진을 찍다가 1935년 그와 두 번째 결혼했다.

 

 

Dorothea Lange: photograph of workers in a Georgia forest Workers extracting turpentine in a Georgia forest; photograph by Dorothea Lange, c. 1930s. Library of Congress, Washington, D.C.
Dorothea Lange: photograph of an Oklahoma migrant stalled Oklahoma migrant stalled in the California desert in 1937; photograph by Dorothea Lange. Library of Congress, Washington, D.C. (neg. no. LC-USF34-016311-E)

 

 

1935년에 연방 재정착국(Farm Security Administration)의 위원회는 랭의 강력한 이미지가 농촌 빈곤층의 상황을 대중의 관심을 끌게 해주기를 희망했다. 랭의 이재민 사진들은 뉴딜 정책의 일환인 농장안전운영단(FSA)에 보고되었다.

 

1935∼1942년까지 7년에 걸쳐 FSA운동에 가담하면서 공황기의 미국을 특히 이민 노동자나 소작인 등을 중심으로 한 다큐멘타리 사진을 발전시킨 사람은 바로 랭이다.

 

 

Dorothea Lange: photograph of a Mexican migrant worker Mexican migrant worker, Imperial Valley, California, 1937; photograph by Dorothea Lange. Dorothea Lange/Library of Congress, Washington, D.C. (fsa 8b31704)

 

 

얼마간 함께 생활한 이주노동자 사진에는 노동자 본인의 말이 담긴 캡션이 자주 소개됐다. 로이 스트리커 FSA 소장은 그녀의 가장 유명한 초상화인 캘리포니아 니포모 (1936년)를 그 기관의 의제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여겼다. 그 작품은 현재 의회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랭의 첫 번째 전시회는 1934년에 열렸고, 그 후 숙련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서의 그녀의 명성이 확고히 자리잡았다. 1939년 그녀는 "American Edouts:"라는 책에서 자신의 사진집을 출판했다. 인간의 침식에 대한 기록입니다.

 

“미국민이 미국을 자부하게 만든” 사진작가 앤셀 애덤스(Ansel Adams)는 1945년 마침내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에 예술사진과를 개설했고 도로시아 랭을 교수로 초빙했다.  

 

1953-54년 랭은 에드워드 스티첸과 함께 1955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주최한 전시회인 "The Family of Man"에서 일했다. 스티첸은 그녀의 사진 몇 장을 쇼에 포함시켰다. 이후 10년 동안 그녀는 세계를 여행하며, 특히 남아시아, 중동, 남아메리카를 포함한 아시아 전역의 나라들을 사진적으로 촬영했다. 마침내 1965년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의 해에, 랭은 다음 해에 MoMA에서 열릴 그녀의 작품 전시회를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회고전이 열리기 직전에 식도암으로 죽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첫째, 주제를 함부로 변경시킨다든가 또는 적당히 손질해서는 안 되고 둘째, 대상은 환경의 일부로서 거기에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같이 취급해야 하며 셋째, 대상을 과거와 현재라는 흐름 속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 도로시아 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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