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사, 가을이 그대로 머무는 곳, 부여 천년고찰 그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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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온통 단풍으로 물들면서 가고 싶은 곳도 많고 머물고 싶은 곳도 많다.

 

가을이 그대로 머무는 곳

그곳에 가고 싶다

 

어디를 가도 가을여행을 하면 느끼는 것도 많고 또한 아름답다고 여기는 곳도 많지만 부여에 있는 천년고찰 무량사를 방문하면 이곳에서 그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 든다. 무량사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인지 또는 은둔의 천년사찰이라 그런지 몰라도 가을에 이만큼 아름다운 장소에서 고즈넉하게 가을을 찾아본다는 것은 매우 만족스럽다.

 

무량사 입구에 들어서면 만나는 일주문. 만수산무량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PhotoGuide.com KoreaPhot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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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천년사찰 무량사

가을 나그네가 꼭 가볼만한 곳

 

가을을 사냥하는 듯 단풍잎들의 향연을 쫒는 것도 좋지만 자연 속에 호젓한 느낌 그대로 있는 곳을 찾고자 한다면 부여 천년사찰 무량사를 찾아도 좋습니다.

 

소설가 윤대녕은 무량사를 ‘계절이 침몰하는 장지(葬地)’라고 했습니다.

이 가을 단풍잎이 지면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안타까움의 표현이겠지만 고색창연한 무량사의 가을을 그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었겠습니까?

 

무려 사찰의 명칭도 무량사(無量寺)이다.

 

무량이란 말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 잴 수 없는 것, 무한한 것 등을 의미하는데 무량사는 무지하고 몽매한 중생을 구제하는데 있어 부처님의 공덕이 무한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무량은 끝이 없다는 뜻이기도 한데 사찰의 이름을 무량사로 정한데는 다 이유가 있을듯 한데 무지한 중생의 생각으로는 쉽게 알 수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목숨도 셀수 없으며 또한 삶을 살아가는 수명도 셀 수 없는 곳이 바로 극락이니 무량사가 바로 극락정토를 지향하는 사찰이라는 의미이기도 할 것 입니다.

 

무량은 ‘끝이 없다’는 뜻이고, 만수산의 만수 역시 오랜, 끝없음을 뜻하는데 산과 사찰의 명칭이 하나와 같이 어우러집니다. 

 

본격적으로 무량사로 들어섭니다.

무량사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이 나옵니다.

사찰을 가면 늘 지나는 곳이지만, 이곳을 지나면 내가 무슨 죄를 짓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들죠.

 

ⓒPhotoGuide.com KoreaPhot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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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을 지나면 무량사 전경이 보입니다.

 

사찰의 느낌인가? 아니면 무량사라는 이름 때문인지 이곳에 오니 계절의 느낌과 시간도 정지된 듯 합니다.

그냥 하늘만 바라봐도 좋습니다.

 

이때 무량사를 둘러싼 단풍잎들은 그 시간의 정지를 시선으로 머물게끔합니다.

조금은 붉은색, 그리고 노랑색으로 그리고 아직은 초록으로 그대로 남은 형형색색의 단풍잎들이 가을의 무량사 분위기를 그대로 자아냅니다.

 

무량사 단풍 절경 ⓒPhotoGuide.com KoreaPhoto.kr
고즈넉한 가을 분위기에 쌓인 무량사 ⓒPhotoGuide.com KoreaPhoto.kr
무량사 단풍풍경 ⓒPhotoGuide.com KoreaPhoto.kr

 

가을을 조용하게 만나는 무량사입니다.

 

무량사는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사찰로 문화재청이 선정한 사진찍기 좋은 가을풍경 문화재 30선에 에 선정된 멋진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가을 휴일임에도 사람들이 많이 없어 정말 넉넉하게 가을을 볼 수 있었다니 행운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PhotoGuide.com KoreaPhot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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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의 가을 분위기는 어디를 보아도 아름답고 호젓합니다.

사찰 곳곳에 은은하게 풍기는 가을 느낌은 그냥 어디에 앉아서라도 시간을 보내고 싶게 만듭니다.

가을에 혼자라도 이곳을 방문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부여 10경중 하나라는 무량사의 사찰사진입니다.

가을에 사찰 사진을 찍고자 출사를 한다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지금과 같이 단풍사진을 찍고 고즈넉한 시간을 갖고자 한다면 무량사에서 가을의 만추를 만끽해보시기 바랍니다.

 

ⓒPhotoGuide.com KoreaPhot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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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의 역사와 문화재

알고보면 더 재밌습니다


무량사는 마곡사의 말사로 절에 대한 연혁은 자세히 알수 없다고 합니다. 알려진 바로는 신라때 범일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그후 고려초기에 개창되었지만 임진왜란때 병화에 사찰전체가 불타버린 뒤 조선 인조때에 중건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무량사에는 많은 유물과 문화재가 또한 있습니다.

극락전(보물제356호), 오층석탑(보물제185호) 석등(보물 제233호), 미륵불괘불탱(보물 제1265호) 등의 보물과 김시습 부도, 영정, 당간지주 등 도지정 문화재가 있으며, 주변에 무진암, 도솔암, 태조암 등 여러 암자가 위치하고 있어 요즘 같은 가을 휴일에는 하루를 만끽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무량사 극락전은 보물 제356호로 우리가 쉽게 보기 어려운 ‘통으로 된 2층’ 불전이라는 것이다.

또한 보물 제185호인 무량사 오층석탑은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전기의 탑으로 매우 예술적입니다. 그리고 오층석탑 옆에 있는 보물 제233호 무량사 석등은 고려 초기의 예술 양식이 잘 표현되어 있는 석등으로 선이나 비례가 대단히 유려합니다.

 

ⓒPhotoGuide.com KoreaPhot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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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더 깊게 생각하는 인물

무량사에서 김시습을 만나다

 

매월당 김시습이 무량사에서 말년을 보냈다는 것을 이곳을 방문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세상을 피해 이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입적했다니 참 이곳이 매우 유래가 있는 사찰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만수산 무량사는 매월당 김시습과의 인연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김시습은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죽인 후 왕이 되는 것을 보고 평생을 떠돌았는데, 말년에 무량사에 스며들어 설잠이라는 법명으로 지내다 입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량사에는 김시습의 초상화도 걸려있는데, 그 작품이 진짜 김시습의 초상화인지는 여러분들이 보시고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가을 어느날 무량사를 걷다가 매월당 김시습을 이곳에서 정말 우연히 만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량사에서 김시습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하게 알아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매우 영특하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당시 집현전 학사 최치운이 김시습의 이름을 지었는데 ‘논어’ 학이(學而)‘편에 처음 나오는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悅)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따온 글자라고 합니다. 얼마나 그가 천재같으면 그러한 이름을 지어 주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량사 일주문을 들어서자 매월당 시비와 만나게 됩니다.

잠시 가던 가던 길을 멈춰서 그 시비를 천천히 읽어봅니다.

 

조선 당대의 풍운아이자 천재 시인이었던 김시습도 이곳에서 우리가 본 가을을 이전에 그대로  보았을까요?

 

새로돋는 반달이 나무가지 위에 뜨니
半輪新月上林梢
산사의 저녁종이 울리기 시작하네
山寺昏鐘第一鼓
달그림 아른 아른 찬이슬에 젓는데
淸影漸移風露下
뜰에 찬 서늘한 기운 창문으로 스미네
一庭凉氣透窓凹

 

〈가을 밤의 새달(中秋夜新月)〉 2수 중 1수, 1983년에 매월당을 기리는 문인들이 세운 것이라 합니다.

매월당 시비 ⓒPhotoGuide.com KoreaPhoto.kr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 작품을 남긴이가 바로 김시습입니다. 그리고 그는 시대를 앞선 선구적 철학자였기도 합니다. 

 

그는 비록 속세를 떠난 것 같았지만  “의(義) 아닌 부귀는 뜬구름과 같다는 변(辨)”을 쓴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의에 주리고 백성들의 고통에 슬퍼했다고 하니 김시습의 애민정신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철학과도 그 맥이 통합니다.

 

김시습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금이 왕위에 올라 부리는 것은 민서(民庶)뿐이다. 민심이 돌아와 붙좇으면 만세토록 군주가 될 수 있으나, 민심이 떠나서 흩어지면 하루 저녁도 기다리지 못해서 필부(匹夫)가 되는 것이다. 군주와 필부의 사이는 머리카락(毫釐)의 차이로 서로 격해 있을 뿐이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창름(倉?·곡식 창고)과 부고(府庫·재물 창고)는 백성의 몸이요, 의상과 관(冠·모자)과 신발은 백성의 가죽이요, 주식(酒食)과 음선(飮膳)은 백성의 기름이요, 궁실(宮室)과 거마(車馬)는 백성의 힘이요, 공부(貢賦·세금)와 기용(器用·물건)은 백성들의 피다. 백성이 10분의 1을 내서 위에다 바치는 것은 원후(元后·군주)로 하여금 그 총명을 써서 나를 다스리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임금이 음식을 받게 되면 백성들도 나와 같은 음식을 먹는가를 생각하고, 옷을 입게 되면 백성들도 나와 같은 옷을 입는가를 생각해야 한다.”(‘애민의’(愛民義))

왕이 이 세상의 최고요 지존이었다는 조선왕조 시절에 이러한 김시습의 말은 정말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말이라 여겨집니다.

 

매월당 김시습 영정 / 시도유형문화재 64호. 충남 부여 무량사 소장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선생(1435∼1439)의 초상화 ⓒPhotoGuide.com KoreaPhoto.kr

 

무량사에 모셔진 김시습 초상화입니다.

김시습은 세조(世祖)때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유학과 불교에 능통한 학자로서 말년에 무량사(無量寺)에 은거하다가 59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한 인물입니다.

무량사에 왔다가 김시습에 푹 빠졌습니다.

 

무량사를 포근히 둘러싸고 있는 만수산은 일년 열두달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같은 단풍철에는 가을의 멋진 기운을 함께 하면서 다양한 등산코스로 산행도 할 수 있으니 넉넉하게 시간만 된다면 트레킹도 충분합니다. 

무량사는 문화재가 많기도 한데 이곳 극락전은 보물 365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흔하지 않은 중층건물이라는 점이 이색적입니다. 또한 미륵보살궤불은 보물 제 126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김시습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데 보물 제1497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무량사에서 가을의 시간을 보내고 바로 옆 도솔암으로 이동해 보았습니다.

 

무량사에서 도솔암 가는길, 멋진 가을이 그대로 보입니다. ⓒPhotoGuide.com KoreaPhoto.kr
도솔암 ⓒPhotoGuide.com KoreaPhot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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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만수산 무량사 찾아가는 길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

네비 주소를 위를 찍고 가면 되고, 무량사 앞에 넓은 주차장이 있습니다.

주차장도 넓어서 차를 주자하는데 편리했습니다. 주차비는 무료입니다.

 

부여에 가을여행을 갔다면, 부여 10경도 함께 보고 오면 더욱 좋습니다.

충청도에서 가볼만한 곳, 부여에서 가볼만한 곳입니다.

 

ⓒPhotoGuide.com KoreaPhot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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