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시 :: 겨울밤에 시쓰기, 안도현 시 - 첫눈 내리면, 정호승 시

계절은 가을을 보내고 또 겨울을 맞이하였다.

언제나 늘 그렇듯 한해를 보내면서 끝으로 오는 이는 겨울이었다.

그 해 겨울도 그랬다.

가을이 끝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겨울이 훌쩍 다가왔다.

 

늘 서성이면서 올 것 같지 않은 그는

차가운 느낌으로 갑자기 와봐렸다.

코트 깃을 세워 그가 온 것을 못본척 하려했지만

겨울은 센 바람으로 코트 깃을 날려버렸다.

 

겨울은 또 그렇게 심술을 부리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도 안고 가야할 계절이었다.

이런 때 시를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여기 겨울을 담담하고 간결하게 시로 쓴 이들이 있다.'안도현과 정호승의 시는 늘 좋다.

안도현의 겨울밤에 시쓰기와 정호승의 첫눈 내리면 이라는 시는 이런 겨울이 시작 될 때 음미해볼만 하다.

 

 

사진이 있는 시

겨울밤에 홀로 걷기 ⓒPhotoGuide.com Korea Photos

 


겨울밤에 시쓰기

안도현

연탄불 갈아보았는가
겨울 밤 세시나 네시 무렵에
일어나기는 죽어도 싫고, 그렇다고 안 일어날 수도 없을 때
때를 놓쳤다가는
라면 하나도 끓여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벌떡 일어나 육십촉 백열전구를 켜고
눈 부비며 드르륵, 부엌으로 난 미닫이문을 열어 보았는가
처마 밑으로 흰눈이 계층상승욕구처럼 쌓이던 밤

나는 그 밤에 대해 지금부터 쓰려고 한다
연탄을 갈아본 사람이 존재의 밑바닥을 안다,
이렇게 썼다가는 지우고
연탄집게 한번 잡아보지 않고 삶을 안다고 하지 마라,
이렇게 썼다가 다시 지우고 볼펜을 놓고
세상을 내다본다. 세상은 폭설 속에서
숨을 헐떡이다가 금방 멈춰선 증기기관차 같다
희망을 노래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이 드는 일인가를 생각하는 동안
내가 사는 아파트 아래 공단 마을
다닥다닥 붙은 어느 자취방 들창문에 문득 불이 켜진다
그러면 나는 누군가 자기 자신을 힘겹게도 끙, 일으켜 세워
연탄을 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리 수출자유지역 귀금속 공장에 나가는 그는

근로기준법 한줄 읽지 않은 어린 노동자
밤새 철야작업하고 왔거나
술 한잔하고는 좆도 씨발, 비틀거리며 와서
빨간 눈으로 연탄 불구멍을 맞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 타버린 연탄재 같은 몇 장의 삭은 꿈을
버리지 못하고, 부엌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연탄냄새에게 자기 자신이 들키지 않으려고
그는 될수록 오래 숨을 참을 것이다
아아 그러나, 그것은 연탄을 갈아본 사람만이 아는
참을 수 없는 치욕과도 같은 것
불현듯 나는 서러워진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눈발 때문이 아니라
시 몇 줄에 아등바등 매달려 지내온 날들이 무엇이었나 싶어서
나는 그동안 세상 바깥에서 세상 속을 몰래 훔쳐 보기만 했던 것이다

다시, 볼펜을 잡아야겠다
낮은 곳으로 자꾸 제 몸을 들이미는 눈발이
오늘밤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불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나는 써야겠다,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지금 내가 쓰는 시가 밥이 되고 국물이 되도록
끝없이 쓰다 보면 겨울 밤 세시나 네시쯤
내 방의 꺼지지 않는 불빛을 보고 누군가 중얼거릴 것이다
살아야겠다고, 흰 종이 위에다 꼭꼭 눌러
이 세상을 사랑해야겠다고 쓰고 또 쓸 것이다


첫눈 내리면

정호승

첫눈 내리면..
그대 이제 눈물을 거두십시오

첫눈 내리면 그대 결코..
슬픈 G현을 켜지 마십시오

첫눈 내리는 날..
나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

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
첫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고..

사계절 매일 첫눈으로 내릴
내 안의 소중한 사람아...


첫눈 오는날 만나자

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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