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소소한 사진이야기

[사진으로 보는 역사] 조선 태조 이성계의 한양 천도, 경복궁 풍경사진과 고궁의 미를 함께 보다.

by photoguide 2021.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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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고궁은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자, 우리의 전통미를 간직한 곳이다.

 

경복궁은 늘 자주가는 곳이지만, 얼마전 방문했던 그곳은 겨울의 끝자락에서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인지 중국인들의 시끄러운 소리도 별로 들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한적한 분위기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서울을 둘러싼 네개의 산인 북한산(북) 관악산(남) 아차산(동) 덕양산(서)이 있는데, 내사산으로 주산(主山)인 북쪽의 백악(白岳) 안산(案山)인 남쪽의 목멱(木覓, 남산) 동쪽의 타락(酡酪, 낙산) 서쪽의 인왕(仁王)이 감싸안은 곳, 그 너른 품의 넉넉한 땅에 자리잡은 것이 바로 경복궁이다.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인 경복궁(景福宮)은 이곳, 서울의 중심인 백악산 남쪽에서 서쪽으로 조금 치우친 곳에 있다.

 

조선건국역사에 등장한 경복궁

이성계의 한양 천도 프로젝트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서 건국한 조선 왕조는 1392년부터 1910년까지 27대 518년 동안 이어졌는데, 조선의 역사는 실로 경복궁과 함께 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말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이성계 무장세력들은 475년 동안 지속된 전 고려 왕조와 개경으로 향하는 백성의 민심을 빠른 시간에 새로운 왕조로 끌어당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편 기득권 세력과의 끊임없는 내부 갈등은 정치갈등을 늘 증폭시켰기에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수도로의 이전은 필연적인 과제로 인식된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신하들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의 대립과 궁궐터 선정에 관한 핵심 관료들의 이견으로 쉽게 천도는 하기 어려운 듯 보였다. 하지만 이성계의 천도 의지는 강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새로운 수도 후보지로 거론된 계룡산과 신촌 일대인 무악, 그리고 백악산 아래 한양을 직접 둘러보았다가 결국 한양을 낙점했다. 1394년(태조 3) 8월, 태조는 무악을 살펴보고 돌아오는 길에 옛 고려의 이궁(離宮)이 있는 남경(南京), 즉 한양의 옛 행궁(行宮)에 머물면서 그곳을 새로운 수도의 터로 내정했다.

 

이성계는 개경으로 돌아와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해 궁궐 조성의 임무를 맡게 하였다. 그리고 한양으로 권중화·정도전·심덕부·김주·남은·이직을 보내 궁궐과 종묘·사직이 들어설 자리를 정하도록 명한다.

본격적으로 천도를 추진한 것이다.

 

그해 10월 25일, 한양으로 도읍을 결정한 태조 이성계는 종묘와 궁궐의 위치만을 정한 채 개경을 떠나 28일에 한양에 도착해 한양부 객사를 이궁으로 삼아 정무를 보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궁궐 조성도 촉진되어 이듬해인 1395년 9월 25일에는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결국 조선 왕조 최초의 궁궐인 경복궁이 창건된 것은 이때였다.

그리고 경복궁은 조선의 역사 전체를 통해 내내 그 중심에 있게 되었다.

조선 건국사에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경복궁!

그곳을 사진으로 담아본다.

 

ⓒPhotoGuide.com Korea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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